소은공

소은공 스토리

소은고택의 주인 소은공(1895년-1973년)은 여주이씨 밀양 퇴로문중의 도하공의 차남으로 퇴로에서 나서 별세하시는 날까지 퇴로에서 뿌리를 두고 살아오신 분이다. 소은공은 여주이씨 퇴로 문중의 가학인 성호학파의 일원으로서 탁월한 유학자일  뿐아니라 문중에서 설립한 화산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워 신구를 겸전한 학자이었으며, 정진학교와 명륜학원 등 육영사업에 평생을 헌신한 교육 사업가이었다.

대한제국의 멸망과 국권상실, 개화기 신학문의 급격한 유입,  왕정 폐지와 신분제 폐지 등  수많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육이오 동족상잔 및 4.19와 5.16을 포함한 정치적 급변의 세월을 온몸살아 내신 이시대의 마지막 선비였다. 

소은공은 두발은 잘랐으나 망건과 갓 등 우리복식을 평생 고수하였는데 이는 앞세대의 보발과 뒷세대의 양복이 절충하는 가운데를 취한것으로 선생의 시대적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선생은 별세하는 날까지 이 복식을 버리지 않았으니 여주이씨 퇴로 문중에서 신식복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일상에서 우리 한복을 입고 지낸 마지막 인물이었다.

소은 이태형 선생의 주요 약력

  • 11895년 경남 밀양 퇴로 마을에서 여주이씨 교위공파  퇴로문중의 도하공 이병규의 4남2녀 중  차남으로 출생
  • 2가학인 전통을 따라  유년시절부터 유학을 깊이 수학하였을 뿐 아니라 퇴로 문중에서 1907년 설립한 화산의숙에서 대소가의 다른 종반들과 함게 천문, 산수, 측량술 등의 신학문을 배워 신구겸재함
  • 3 배위 성산이씨와 성혼하여 슬하에 3남 1녀를 둠.
  • 41909년에 문중에서 설립한 노동야학소에서 농민들에게 한자,  산술, 체조 등을 가르침
  • 5백형의 별세후 부모님 봉양을 위해 퇴로리311번지인 현재의 소은고택으로 이주함 (1936년 12월)
  • 6여주이씨 퇴로 문중이 우리민족정신을 고취하고 후학을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한 사립정진학교(1921년~1939년)의 운영에 깊숙이 참여하고 3대교장에 역임 (초대 교장은 소은공의 재종숙부 퇴수재 이병곤 선생, 초대 교주는 부친 도하공 이병규 선생이 역임함)
  • 7해방직후 재종숙부 퇴수재공을 도와 밀양유도회를 설립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1955년~1957년 밀양 유도회 회장 역임
  • 8해방후 문중과 밀양 유도회가 뜻을 모아 설립한 중등 교육기관인 명륜학원(현재 밀성중고등학교 전신)의 초대원장 및 재단법인밀양명륜학원의 초대이사 역임
  • 91973년 소은고택에서 향년 79세로 별세. 유고로 소은유집(小隱遺集)이 있음.